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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도 李晩燾

 
  • 자 관필(觀必), 호 향산(響山)
  • 1842 ~ 1910

역사인물 정보

반일투쟁(反日鬪爭)을 주도하고 단식으로 생명을 국망(國亡)과 같이 하다.
1894년(고종 31) 6월 개화당 정부가 성립되고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정부는 일본과 공수동맹을 체결하고, 자주 독립을 천명하고, 내정의 혁신을 단행하였다.
이 때 이만도는 “이는 오로지 속 검은 왜놈들에게 우롱당하는 것”이라 하여 즉시 그 불가함을 상소하였으나 이른바 개혁을 실시한다고 신하(朝臣)의 상소를 금했으므로 봉납되지 못하였다.

이듬해 8월 명성왕후가 일인에 의해 피살되자 상복을 입고 일월산 국사봉에 올라 한양을 향하여 통곡하였다. 그해 11월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에 추대되었으나 미처 대오가 정비되기 이전에 경병(京兵)에게 안동의진이 무너지고 의병을 해산하라는 왕명이 내려져 군사를 해산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극형에 처하고 보호조약을 철회하라는 상소를 작성하여 아들 중업을 시켜 올리고 고향 토계리를 떠나 산곡을 전전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의 변을 들은 이만도는 청구촌율리(靑丘村栗里:예안면 인계동)에 있는 재종손 강흠의 초당을 찾아 단식을 결행하였다. 9월 5일 곡기를 끊은 지 20여 일째 일본 헌병이 강제로 급식하려 하자 일어나 꾸짖어 물리쳤다. 다음 날 아들에게 유계(遺戒)를 남기고 9월 8일 사망하였다.

[출처] 유교넷 (www.ugyo.net)